이 주제는 오늘 링크드인 (LinkedIn)에서 만난 좋은 글에서 소재를 얻었습니다.
타인에게 관대하신 편인가요?
라고 그 글을 쓰신 분이 물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관대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글에서 관대함이란 것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누가 관대할까요? 성경에 보면 재미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빚을 탕감받는 비유인데요
어떤 왕이 100억을 빚진 사람을 불러다가 갚지 않으면 감옥에 넣겠다고 했더니 사정을 하면서 말미를 주면 꼭 갚겠다고 하는데 왕은 한걸음 더 나가서 빚을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이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나가다가 자기에게 100만원 빚진 사람을 만나서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다가 사정하는 사람을 그냥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왕에게 가서 이르고 그 사람은 다시 잡혀가서 빚 100억을 다 갚아야 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쉽게 쓰느라 각색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100억 탕감받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성경은 내가 용서 받은 죄가 얼마나 큰데 다른 사람의 사소한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가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관대함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내가 받은 관대함이 얼만데 이런 사소한 것도 못 들어주겠냐는 거죠.
또 다른 면에서는 내가 엄청 부자면 아무래도 좀 관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재산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벌들의 행태는 땅콩 사건에서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내가 가진 것이 얼마인지 알아야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 만원 밖에 없는데 기분에 만원을 거지에게 주고 자기는 몇 시간을 걸어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는 안잖아요.
우리 집이 부자고 100억 넘는 재산이 있다면 오늘 만원 손해 보는 일은 별로 타격이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인지 계산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가진 것의 가치가 클수록 남에게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즉 내가 가진 것을 크게 인식하면 관대해집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이 대단하다고 느끼면 관대해집니다.
내 가족, 내 아내, 내 자녀가 소중하고 이 행복을 주신 게 감사하면 관대해집니다.
우리나라처럼 평화롭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가 정말 많지 않습니다. 관대해 질만 하지 않나요?
저는 제 스스로가 전 세계 상위 1% 안에 드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관대해질 수 있을까요?
제가 늘 묵상하는 가치들 중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비밀 - 무경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양보하면서도 결국은 이기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하죠.
우리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늘 배웠습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경쟁을 합니다. 내가 먼저 승진하고 내가 1등 해야 하고 내가 먼저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손해 보면 바보라고 양보하면 못났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자동차에 조금만 받히면 드러누우라고 배웁니다. 한몫 단단히 뺏을 기회라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무조건 우기는 것이 장땡이라고 듣고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무례하고 무식하고 말이 안 통하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관대함을 배웁시다. 관대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르치고 자녀들에게 가르칩시다.
왜 나만 그래야 하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왜 나만 손해를 봐야 하냐고 합니다.
베풀면 하늘이 복을 주신다든지 양보하면 더 배우고 더 잘 성공할 수 있다든지 하는 말은 당장의 가치를 가져다주지 못해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관대해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절대로 손해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십니까?
여기서도 저는 답을 성경에서 찾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답이 없다면 제가 쓰는 답을 참고하세요.
시편 23편에 다윗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저는 궁극적으로 제 배경이 하나님이라고 믿기 때문에 양보가 가능합니다.
오리를 가지고 하면 십리를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41)
거절하면 관계가 악화되고 5리만 가주면 고맙지만 10리를 가주면 마음에 담깁니다. 5리만 더 가주었는데 그 사람은 내편이 됩니다.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 5:47)
하나님이 저의 배경이시기 때문에 남보다 더해도 억울하지 않고 남에게 관대해서 손해를 봐도 하나님이 갚으시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양보하고 손해 보고 따지지 않고 웃고 베풀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사냐고 물으시면 가끔은 그런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ㅠㅠ 저의 속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죠. 그리고 저에게 그렇게 무리하게 요구하신 분도 잘 없고요. 가끔은 열받아서 화도 냅니다. 근데 점점 더 관대해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여유가 생갑니다. 나의 지금이 하나님의 최선이라고 저는 믿거든요. 어떤 사람은 병든 것이 축복이고 어떤 사람은 가난이 축복이기도 합니다. 저에겐 지금의 제 상황이 가장 큰 축복이죠.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배경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모두 아시고 최고의 길을 보이신다고 믿으시면 지금 내 앞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상대에게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작은 선을 행한 것도 그 값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퇴근버스를 탔는데 조금가다 고장이나서 다음 차를 타라고 하네요. 예. 그럴 수 있습니다. 조금 기다리면 되죠. 그래서 앞에 동사무소가 있어서 사전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있음을 감사하면서 관대해집시다.